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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특별한 가정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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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대위 작성일2005.05.12 조회1,4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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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특별한 가정의달


△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 청주공장(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이 가정의 달에 들어있는 건 필연처럼 보인다.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포토스토리]청주 하이닉스반도체 투쟁현장…그들에겐 가족이 있다

5월1일은 노동절이다. 5월 한 달은 가정의 달이다. 호국의 달 6월에 현충일이 들어있는 것과 달리, 노동절과 가정의 달 사이에는 어떤 명시적 상관관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 청주공장(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이 가정의 달에 들어있는 건 필연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이 노동으로서 가치를 상실할 위기 속에서 노동절을, 가족이 있어서 버텨냈고, 가족과 함께 버텨냈다.

정귀숙(39)씨의 맏아들 동준이는 축구를 좋아해 1년이면 운동화를 세 켤레 이상 갈아치우는 녀석이다. 동준이가 얼마 전 학교 바자회에서 헌 신발을 사오면서 좋아라 했다. 동준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정씨는 마음이 아렸다. 그의 남편 김광복(40)씨는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다. 낡은 운동화를 들고 배시시 웃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씨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에도 남편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하이닉스·매그나칩 반도체 사내하청 노동자 240여명은 지난해 마지막날인 12월31일 한꺼번에 ‘계약해지’를 당했다. 이에 앞서 성탄절에는 직장이 폐쇄됐다. 같은해 10월 불법 파견근로 중단과 임·단협 체결, 도급 재계약 승계,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사내하청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12월15일부터 파업을 하다 당한 일이었다. 계약해지 뒤부터 이들은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편과 함께 거리로 나선 아내들, 경찰 저지선을 뚫다

정씨만이 아니다. 뜻이 맞는 많은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내들이 원직복직 등 빠른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남편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나선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엔 청주 상당공원에서 청주노동사무소까지 거리행진을, 금요일엔 청주백화점 뒤에서 시민들과 촛불문화제를 한다. 지난달 22일 민주노총 충북지부 확대간부 집회가 열린 공장 정문 앞에서도 정씨를 비롯한 아내 10여명이 검은 마스크에 면장갑을 끼고 대열 중간에 모여 앉았다.



△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민중가요를 따라 부르고 구호에 맞춰 팔을 흔드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색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난 뒤 공장 정문을 가로막고 선 전경버스 쪽을 향해 나아갔다. 버스들은 쇠사슬과 밧줄로 엮여 거대한 바리케이드 선단을 이루고 있었다. 아내들은 남편들과 함께 쇠사슬과 밧줄을 당기기도 하고 전경들과 거친 몸싸움도 벌였다. 마침내 조합원들은 북문 담장을 넘어 공장 안 잔디밭에서 정리집회를 열 수 있었다. 직장폐쇄 110여일 만이었다. 아내들은 경찰저지선을 뚫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이렇게 남편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에서 농성을 하는 동안 가족들의 생활고는 차츰 심각해지고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상여금까지 반납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지만, 회사가 살아나 원청노동자들의 임금이 회복될 때도 소외받아온 이들의 월급은 벌써 끊긴 지 오래다. 김미연(34)씨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자회사에 다니다 뇌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강원도 고향집 부모님이 서울 통원치료를 위해 차를 사라고 보내준 돈도 생계비로 거의 써버렸다. 파아노 치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첫딸 효진(10)이의 피아노 학원도 다음달엔 끊어야 한다.

생계 꾸리랴 집회하랴…“그래도 끝까지 해볼 만하다”

정귀숙씨는 남편이 해고된 뒤 받는 실업급여 60여만원에 차단기 부품 코일감기로 버는 20여만원으로 네 식구 한 달 생계를 꾸린다. 코일은 하나 감을 때 10원이 떨어진다. 손이 빠른 정씨가 쉬지 않고 하루 4시간을 일하면 1000개 남짓 감을 수 있다. 하루 1만원 벌이다. 실업급여가 끊기는 7월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생활전선에 나서야 한다.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는 것도 요즘 정씨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뜻밖에 싸움이 길어지면서 아내들은 지난달 8일 본격적으로 가족대책위까지 꾸렸다. 해고 이후 받던 실업급여가 끊긴 가족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자, 가족대책위는 이들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는 13일 후원의 밤 행사도 직접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많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가족들이 있기에 끝까지 해볼 만하다고 한다.



△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송대균(34)씨의 4개월된 아들 민우는 집회현장이나 지회 사무실에서 다른 조합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송씨가 정리해고를 당하기 2주전쯤에 낳은 민우는 이젠 집회현장에서 ‘투쟁이’라 불린다. 목요일마다 유모차를 타고 나타나 엄마 류정미(31)씨와 함께 거리행진에 나선다. 얼마 안 되는 월급에 자식키우기 엄두가 나지 않아 결혼 5년 만에야 얻은 아들을 보며, 송씨는 “그래도 이놈 때문에 오늘도 일터를 되찾기 위해 길거리에 나선다”고 말했다.



△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5년 5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가족이 있다.
청주/<한겨레> 사진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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